지은이 깅기
발행 시크노블
발행일 2016년 05월 11일
1.
정오는 내게 죽고 싶다고 했다.
전에도 술 마시면 곧잘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서 역시 그러려니 했다.
이틀 뒤, 바로 어제 정오가 죽었다.
찌든 몰골로 나를 찾아왔던 그 정오가.
정오는 왜 죽기 전에 나를 찾아왔을까.
그가 죽고 나는 줄곧 그날에 대해 생각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무슨 혜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그냥 생각했다. 정오를. 정오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북적북적한 장례식장에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그 애를 추억했다. 그런데.
“정오야.”
발인 일주일 후, 정오가 돌아왔다.
정확히는 내가 녀석을 만나러 갔다는 게 맞다.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쩐 일인지 내 옷장엔 교복이 걸려 있고,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던 엄마가 나를 두들겨 깨웠다. 그리고.
“놔.”
정오도 있었다. 정오가 내 손을 떨쳤다.
나는 다급하게 다른 손으로 정오를 잡았다.
정오가 다시 팔을 뺐다. 나는 양손으로 정오를 잡았다.
정오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무슨 마음으로 그날 나를 찾아왔을까.
정오가 남겨준 질문 때문에 나는 더욱 현재의 정오에게 얽매였다.
정오가 아니면 답을 내지 못하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했다. 궁금하다.
“정오야. 문제가 뭔지 말해 줘. 우리 평화적으로 풀자.”
슬금슬금 물러서다 벽에 막혀 등을 붙였다. 정오가 다가와 나를 가둔다.
침을 꿀꺽 삼켰다. 정오가 또 손을 뻗었다. 이번에야말로 주먹인가?
그러다 정오가 내 입을 막았다. 아예 내 얼굴을 쥐었다.
아귀힘을 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살짝 아프다.
“네 입이 문제야.”
정오의 낮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전을 때렸다.
“네 눈도. 네 전부. 다 문제야.”
<책소개>발췌
2.
깅기님은 연재처에서도 재밌게 본 작가님.
한때는 이 작품을 끝으로 비엘쪽에서 절필하신다고 하셨다가
요즘은 다시 번복하고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신다.
다시 돌아오셔서 정말 기쁘다.
3.
예전 작품을 보면서도 느낀 게
이 작가님 제목을 너무 잘 지으신다.
정점에 달한 게 강을 오르는 고래 같지만.
4.
1인칭 승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문장은 짧게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가지만
화자인 승현이가 귀여운 맹한 구석이 있어서 잘 어울린다.
5.
이 작품은 동성애의 차별에 대해서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깊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회귀 전 정오가 죽기 전에 승현과 만난 자리에서 내뱉는 대화...
“네가 맞았어. 이승현, 네가 맞았어. 난 틀렸고, 네가 맞았어.”
그렇게 말하고 정오는 내게 입술을 맞췄다. 술 냄새가 풍겼다.
정오의 사랑에선 짠 냄새가 났다.
바다와 강 사이에 걸쳐진 고래. 강을 등진 고래는 슬프게 울었다.
이 장면이 많이 가슴 아프고도 좋았다.
6.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맘에 든다.
아픈 경험에서 태어난 모자가정이지만
승현이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보기 좋다.
7.
회귀 전 아픈 이야기는 모두 상자에 꾹꾹 담아 넣고 보지 않았던
승현은 이제 회귀 후 그 아픈 것들을 상자에서 꺼내 마주 보며 이겨나간다.
한편의 멋진 성장물이자 서정적인 힐링물이다.
8.
수위는 거의 없다.
전연령가이고 나오는 건 키스 정도.
수위 없어도 정말 볼만한 작품이고,
오히려 씬 있으면 분위기가 서정적인 분위기랑 안 맞을 것 같다.
9.
강을 오르는 고래가 이북출간이 되어 기대감에 차서 쓰는 거지만
어젯밤엔 <거북이가 점프!> 랑 <남우주연상>이랑 <냉장고에 거인을 넣을 수 있을까>
이 세 작품 이북 나왔으면 좋겠다.
10.
소장본 표지가 이북 표지로 나온 경우인데 좋은 결정이다.
대다수의 작가님들의 소장본 표지가 이북 표지보다 훨씬 예쁘지.